<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대표하는 로즈 아다지오

 

16살이 된 오로라 공주가 4명의 왕자에게 청혼을 받으며 추는 '로즈 아다지오'는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대표하는 춤입니다. 관객인 저마저 조마조마하게 했어요. 왕자들과 교대로 손을 잡으며 균형을 맞추고, 한 발로 중심을 잡은 채 아라베스크와 비슷한 에튀듀드 자세로 턴까지 해야 했던 장면(attitude balance 라고 부르더군요)입니다. 아라베스크는 뒤로 뻗은 다리를 완전히 뻗지만, 에튀듀드는 오므립니다.

 

작년에 발레리나 박슬기씨로 봤는데 올해는 수석 무용수가 된 신승원씨가 공주로 나왔어요. 다소 긴장한 듯한 모습이었던 오로라 공주와 그걸 눈치채고 있었을 왕자들이 조금 흔들리기는 했지만 배려하며 끝까지 해냈을 때 안도의 한숨이 감탄사가 되어 박수와 환호성으로 극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 춤이 명장면이 된 이유는 관객들마저 정서적으로 함께 참여하도록 만드는 아슬아슬한 스릴감에 있지 않을까요?

 

올해 두 번째 관람하니 여유가 생긴 탓인지 음악과 춤만을 쫓기 보다 무용수들의 연기에까지 흠뻑 빠져 들었습니다. 주역들이 춤 출때도 옆의 다른 무용수들이 몸짓과 표정으로 어떻게 서포트하는지, 캐릭터마다 춤은 어떻게 다른지 발견할 때마다 새로운 즐거움이 배가 되더군요.

 

 

 

 

[에튀튜드(좌)와 아라베스크(우)의 차이. 출처: 구글이미지 검색]

 

 

 

 

더욱 익숙해진 차이콥스키의 음악

 

차이콥스키의 음악은 더욱 익숙해졌습니다. 그의 <백조의 호수>와 <호두까기 인형> 음악들과는 많이 친숙한데 비해 유독 <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거리가 있었죠. 발레영상을 보면서 듣기보다 음원을 구입해서 따로 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1877년 <백조의 호수>를 작곡하고 공연한지 10년이나 넘어 만든 이 작품은 1890년 초연되었죠.

 

"나는 음악을 스토리와 유기적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춤과 극적 표현에 논리적으로 개입하는 음악을 작곡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자신의 음악이 춤의 부수적인 존재로 폄하되는 걸 원치 않았던 차이콥스키의 말입니다. 춤을 제외한 콘서트 버전으로도 많이 연주되는 걸 보면 그의 음악이 지닌 가치를 느끼고 저 자신감 넘치는 말이 이해가네요.

 

함께 관람하신 분이 1막 시작하며 나오는 왈츠 음악은 따로 많이 들어 익숙해 있었는데, 처음으로 발레를 보면서 들으니 그 감명의 깊이가 다르다고 하셨지요. 그 느낌이 어땠을지 조금 이해가 갑니다. 저 역시 <백조의 호수> 중 유명한 '정경'을 춤과 같이 들었을 때의 소름 돋음이 발레 매니아로 이끈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역시 발레와 함께 감상할 때 그의 음악 또한 온전히 살아납니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왈츠 장면]

 

 

 

 

인상 깊었던 무대들

 

그 왈츠가 나오는 공주의 생일 축하 연회 장면은 저 역시 좋아하는데 무대 연출 장면도 마음에 들어요. 특히 연녹색 의상을 갖춰 입은 무용수들의 군무에서는 봄의 소리가 들려오는 듯 느껴집니다. 산뜻하고 따뜻했어요. 공주가 잠들어 버리는 숲 속을 연출했을 때도 나뭇잎들이 차양막이 되어 내려오는 장면은 음악과 춤이 경건함 마저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 볼 때는 좌우측의 커튼과 같은 막을 이용하여 공주가 커가는 모습에서 별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다르더군요. 조금씩 커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요. 크나큰 커튼으로 카라보스의 날개를 형상화하여 그 수하들과 함께 왕자를 구워삶으려고 라일락 요정과 대치하는 연출은 대결 구도가 느껴져 긴장감과 즐거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2막의 하이라이트였어요.

 

백설공주, 빨간모자와 늑대, 장화신은 고양이, 알리바바, 개구리 왕자님 등 샤를 페로의 또 다른 동화 속에 나오는 캐릭터 자체가 무대 연출을 돕는 3막은 화려하고 유쾌합니다. 특히 일곱 난쟁이와 개구리 왕자님은 남자인 제가 봐도 너무나 귀엽게 놀고 있어요. 무대 뒷 편에서도 쉬지 않고 춤추는 분들을 응원하고 그 캐릭터에 맞는 연기까지 보여줍니다.

 

 

 

 

 

[국립발레단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넋을 놓게 만들던 주연들의 춤사위

 

처음에 다소 긴장한 듯 보였던 신승원씨는 2막과 3막으로 들어가며 풀렸나보더라구요. 무대 자체를 즐기는 듯 보였습니다. 3막에서 왕자와의 그랑 파드되는 시선을 빨아들였죠. 로즈 아다지오와 비슷한 아라베스크 or 애튀튜드를 여러번 추는 데 아슬함은 없어지고 안정적이며 선의 미를 보여주는 춤에 흠뻑 빠졌습니다. 극에 몰입해있어도 여유로운 공주의 연기는 앞으로 그녀가 보여줄 다른 역할들에 대해서도 기대케했어요.

 

카라보스 역의 발레리노 이영철씨가 보여주는 카리스마와 익살스러움이 함께하는 힘찬 춤은 극의 성공키를 쥐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보지 못했던 그의 연기에 아직도 기억나는 건 공주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지 못해 깽판 치던 모습이었죠. 토라지고 삐진 사악한 마녀의 역할이 어떻게 그리도 잘 녹였는지, 특히 왕과 왕비 그리고 축하연회에 참석한 이들을 농락하는 표정이 생생합니다.

 

작년에 이어 라일락 요정으로 나온 정은영씨는 시종일관 우아하며 카라보스와 대치될 때의 표정에는 단호함이 보이더군요. 플로린 공주로 나온 심현희씨와 파랑새와의 그랑 파드되는 2막에 나오는 디베르티스망(줄거리와 상관없이 흥을 돋구어주는 춤의 구성) 중 단연코 으뜸이었습니다.

 

 

 

 

[발레리나 Svetlana Zakharova가 추는 Rose adagio]

 

 

 

<공연정보>

 

1. 관람일 : 2017년 3월 25일

2. 공연명 : 국립발레단 <잠자는 숲 속의 미녀>

3. 주연 무용수

 1) 오로라 공주 : 신승원씨

 2) 카라보스 : 이영철씨

 3) 라일락 요정 : 정은영씨

4. 공연장소 :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

 

 

by 왕마담 2017.04.26 1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