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몇 일 전 갑작스런 급성 장염에 걸렸다. 혹시나 관람할 때 방해라도 될까 싶어 오전 반차를 내고 병원에 들려 주사맞고 약부터 먹었다. 컨디션 회복을 위해 저녁에는 별다른 약속도 잡지 않고 일찍 잤다. 다행히 공연하는 날 오후부터 정상적인 컨디션이 돌아왔다. 그제야 얼굴에 설렘이 번졌다.

 

40분 전에 도착한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는 이미 설렘 가득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조성진씨의 팬덤이 젊은 층도 많아 어떤 클래식 공연보다 젊은 분들이 많았다. 전에도 전석 매진 공연을 몇 번 봤는데 유난히 사람들이 더 많아 보였고 분위기는 훨씬 들떴다.

 

프로그램은 1부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곡과 2부는 드뷔시와 쇼팽의 곡으로 이어진다. 조성진씨의 첫 번째 라이브 연주,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이 됐다. 작년 김선욱씨의 연주와 얼마나 다를지 기대됐다. 여유로운 부분과 휘몰아 쳐주는 걸 조성진씨는 어떻게 해석했을까?

 

비창은 베토벤의 고뇌와 닮아 있는 줄 알았는데, 청량하게 울리니 신선했지만 조금 낯설었다. 워낙 많이 들어본 곡, 멜로디가 더 잘 들릴 줄 알았는데 명징한 반주가 인상적이었다. 1~3악장 모두 과한 표현을 자제하고 또렷하지만 절제하여 교과적인 느낌이다.

 

 

 

 

 

베토벤 후기 작품 피아노 소나타 30번은 유려했다. 저돌적이기 보다 힘을 뺀 자연스런 연주에 어울렸다. 비창으로 예열된 가슴을 말랑하게 만든다. 오늘 공연에 가장 궁금했던 건 2부의 드뷔시 곡의 연주였다. 그의 성격이랄 수도 있는 선명한 타건에서 오는 또렷한 음정으로 수채화같은 인상을 어떻게 표현할지.

 

잡념이 껴들 새가 없던 2부였다. 드뷔시 영상 2집 3곡 연주가 순식간에 끝났다. 잔잔한 연주에 졸지 않을까 걱정되어 사탕까지 미리 먹었는데, 어찌나 집중했는지.... 나 뿐만이 아니다. 공연장 전체가 정적에 휩싸여 그 오묘한 느낌에 물들었다. 침 삼키는 소리마저 들릴까 사탕을 괜히 먹었다는 생각들었다.

 

그 오묘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음정은 선명한데 안개 속의 흐릿한 풍광을 보는 듯한? 함께 관람한 선배님은 마치 하프의 연주를 듣는 듯 했다고 ... 몽롱한 연주를 들으며 타건을 보고 있으니, 니진스키의 <목신의 오후> 춤과 음악이 생각났다. '와~ 춤을 이렇게 출 수도 있구나' 싶었던. 놀란 기억과 느낌.

 

스케일이 크고 화려했던 쇼팽 피아노 소나타 3번은 총 4악장으로 이루어졌다. 악장마다 매듭이 분명한 데도 불구하고 한 번의 호흡으로 이어졌다. 조성진씨는 가장 자연스런 옷을 입었다. 속주에서도 분명한 음정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컸다. 음들 하나하나 살리기 위해 온 몸을 피아노에 실어 연주하는 걸 보며 감탄을 여러 번 했다.

 

 

 

[조성진씨의 쇼팽 발라드 No.1]

 

 

 

어제(1/10)와 동일한 앙콜을 할 거란 예상은 완전 빗나갔다. 무려 4곡, 그것도 쇼팽 발라드 1번부터 4번까지. 미리 이 곡들까지 충분히 알고 있었으면 더욱 큰 감명을 느꼈겠지만, 그게 뭐 대수인가. 조성진씨의 연주로 먼저 알게 된 것부터 이미 영광이었다.

 

앙콜이 한 곡씩 끝날 때마다 객석 여러 곳에서 기립박수가 나왔다. 발라드 3번까지 연주 후 다시 나온 그가 수줍은 듯 당당하게 손가락으로 '1곡 더' 제스츄어에 환호가 터졌다. 쇼팽의 발라드 완성을 느꼈을테니. 그의 연주에는 분명 뭔가 있다. 마지막 연주가 끝났을 때 기립박수와 환호는 절정을 이루었다.

 

청중으로 가득찬 객석을 바라보는 무대 위 피아노는 외로워보였고 그 앞에 앉은 연주자도 고독해보였다. 조성진씨의 가장 큰 매력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강한 멘탈에 있지 않을까. 인상 마저 긍정적이고 온화해보이지만 또한 단호하다. 메스컴을 워낙 많이 타고 있어 실력은 어떨지 의문스러웠는데, 그는 진짜였다.

 

 

 

 

by 왕마담 2018.01.18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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