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나 방송 등에서 간혹 접하는 발레 동작이 있습니다. 짝다리 착한 버젼이랄까요? 느낌이 너무 다르네요. 곧게 서있는 자세에서 한 쪽 다리를 앞이나 옆 혹은 뒤로 내밀고 있습니다. 발목에 이어 발등 그리고 발끝까지 이어지는 선은 간결하고도 바르죠. 게다가 발등의 아치로 인해 통쾌한 직선에 우아함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발레의 '바뜨망 땅뒤(Battement tandu)'라는 기본 동작이죠. 불안한 마음도 듭니다. 한치의 흐트러짐이 절묘한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어 긴장 마저 느끼죠. 그 아름다움을 위해 중력을 거스르고 몸을 비틀고 근육을 늘리는 고통을 감수합니다. 한 번 추고 나면 진이 빠지겠죠. 그래서일까요? 발레 공연은 주역 무용수가 매일 바뀌는데도 기간이 짧습니다.

 

보고 싶어도 일상과 공연의 교집합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관람하기 어렵죠. 연초에 나온 국립발레단 공연 스케쥴을 잘 갈무리 해놓은 덕분에 좋아하는 무용수가 나오는 보고 싶었던 작품 <라 바야데르(La bayadere)>를 관람했습니다. 2014년 강수진씨가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후 처음으로 선보였던 작품이었죠.

 

 

[발레의 기본 중 기본 동작, 바뜨망 땅뒤(battement tandu)]

 

 

 

인도의 무희를 뜻하는 '바야데르'는 고전 발레의 대표로 손꼽힙니다. 신에게 바쳐진 무희 니키아(이은원씨)는 전사 솔로르(프리드만 포겔)와 사랑하는 사이죠. 하지만 권력에 취해 공주와 결혼하는 그와 무희에게 빠진 대제사장 브라만의 질투와 음모 그리고 꿈 속에서의 진정한 사랑, 내용만 보면 낭만주의의 기류가 가득합니다.

 

왜 이 작품이 고전주의일까 궁금했어요. 음악과 문학을 보면 형식과 규칙, 집단을 중요시하는 고전주의 속에서 개인의 감정과 현실이 아닌 몽롱한 세계를 그려내는 낭만주의가 발현합니다. 하지만, 발레의 흐름은 달랐어요. 이탈리아에서 넘어와 16세기 프랑스 궁정에서 추다가 루이 14세 때 귀족으로 전파되며 발전하는 낭만 발레 시대가 꽃피웁니다.

 

러시아 황실에 초청 받아 마린스키 극장 예술감독이 된 마리우스 프티파라는 인물이 있어요. 보기 좋은 구도에서 일정한 규칙과 룰을 만듭니다. '파드되'라는 2인 형식의 춤도 그가 만들어 성공합니다. 그때부터 '권위(혹은 형식)가 있다'는 뜻에서 '고전주의 발레'라 부르며, 러시아에서 찬란한 시대를 맞이합니다. <라 바야데르>는 프티파의 작품이죠.

 

 

 

[2014년 공연된 국립발레단의 <라 바야데르> 프레스콜]

 

 

 

작년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에서 받았던 큰 감명은 다른 발레 작품에까지 관심이 넓혀지게 되었습니다. 얼마 지나 유니버셜 발레단의 <라 데야바르>도 보게 되었는데 기대했던 감동을 받지 못해 아쉬웠어요. 알게 모르게 영화나 방송 등에서 접했던 백조의 호수에 대한 익숙한 감각과의 차이였던 듯 싶습니다.

 

본의 아니게 예습이 되었으니 기대 됐어요. 작년에 이미 Live 공연을 접해 봤고, 국립발레단의 163회 정기 공연이자 2016년 첫 번째 작품이니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겠습니까. 거기에 이름은 친숙해진 발레리노이자 안무가인 루돌프 누레예프의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라 바야데르>를 구입하여 미리 관람했습니다.

 

백조의 호수에서 오데트와 흑조 오딜 1 2역 주인공을 맡았던 발레리노 이은원씨가 차이코프스키의 익숙한 음악에 맞춘 날개짓이 여전히 뇌리에 남아 있어요. 니키아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했습니다. 한예종 영재입학 및 국립발레단 입단 2년만에 수석무용수를 꿰찬 실력에 이국적이고 시원스런 몸짓 더해 고대 인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에 잘 맞았어요.

 

 

[막이 끝날때마다 주요 배우들의 커튼콜이 있었다]

 

 

 

무희로서 제사장은 물론 신까지 버리고 솔로르를 사랑하는 니키아는 독립적인 여성입니다. 그녀를 애모하는 제사장 브라만과 그를 존경하여 자신의 딸과 맺어주려는 왕이 갈등의 배경이라면, 공주 감자티(김리회씨)는 핵심이죠. 권력에 취해 거절하지 못하고 공주와 약혼하는 솔로르는 이 막장 스토리를 만드는 완전체의 마침표입니다.

 

니키아와 솔로르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주이지만, 작품을 구성하는 연출은 블록버스터급이죠. 100명이 넘는 무용수가 출연하고, 200여벌이 넘는 의상이 나오며 총 3 2번의 인터미션으로 구성됩니다. 2막에서 약혼을 축하하는 디베르티스망(Divertissement)이 단적으로 보여주죠. 스토리와 상관없는 부채 춤, 황금신상과, 북 춤 등은 흥겹고 화려합니다.

 

그 중 황금신상(이동훈씨)은 단 한 번의 출연으로 강렬한 카리스마를 남겨요. 불상하면 떠오르는 특유의 몸짓을 높은 점프와 군더더기 없는 춤으로 에너지 넘치게 보여줍니다. 발레리노의 매력을 단 번에 느낄 수 있죠. 축하의 마지막은 무희 니키아입니다. 어쩔 수 없이 그들 앞에서 추어야 하는 춤에는 슬픔이 가득차있습니다.

 

 

[독특한 리듬의 신나는, 북 춤]

 

 

 

솔로르 선물로 착각한 꽃바구니를 받고 기쁜 몸짓도 잠시 이내 감추어진 흉한 독사에게 물리죠. 제사장 브라만은 자신의 사랑을 받아줄 것을 청하며 해독제를 내밀지만, 사랑없는 세상 대신 죽음을 택하죠. 뒤늦게야 후회하는 솔로르는 꿈에서라도 그녀를 만나기 위해 환각제에 취한채 잠이 들고 작품을 대표하는 군무로 3막이 시작합니다.

 

'망령의 제국'이라는 안무는 <라 바야데르>를 대표하지요. 32명의 발레리나가 하얀색 튀튀 의상을 입고 함께 춤추는 발레 블랑입니다. 첫 번째 쉐이즈 솔로스트가 아라베스크와 허리를 뒤로 꺾는 깜브레를 추며 비탈을 내려와요. 곧이어 두 번째 세번째..... 서른 두 번째까지 같은 춤을 추면서 내려옵니다. 처음 춘 사람은 마지막 무용수가 내려올 때까지 같은 춤을 계속 추어야 하죠.

 

밤과 같이 어두운 곳에서 달빛과 같은 은은한 조명을 타고 나오는 이 군무를 보고 있으면 환상 속에 빠져 있는 느낌을 솔로르와 함께 관객에게도 주고 있어요. 천상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끝에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니키아와 솔로르가 스카프를 통한 파드뇌에서 선으로 이어진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막이 내립니다.

 

 

[화려하고 이국적인 분위기로 가득찬 <라 바야데르>]

 

 

 

이 라스트 신은 누레예프 버전으로 알려져 있어요. 솔로르가 니키아를 따라 사자들의 세계로 떠나는 것입니다. 나탈리아 마카로바 버전에서는 꿈에서 깨어 다시 현실로 돌아와 감자티와 결혼식을 올리지만, 식장인 신전이 붕괴되며 막이 내립니다. 확실한 결과지만 성공과 권력을 쫓는 솔로르의 모습이 현실을 반영하고 복수로 마무리되어 씁쓸할 듯 하네요.

 

이국적인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한 배경의 찬란함은 성격이 다른 막에 따라 적절합니다. 잘 나가는 뮤지컬과 같이 투자만 더 받는다면 무대 디자인의 퀄리티가 훨씬 높아질 거 같았어요. 배경이 거대한 벽화로만 표현된 게 조금 아쉬웠습니다. 한편 춤에 집중되어야 할 시선의 분산을 막기 위한 심플함일 수도 있을 듯 하네요.

 

무용수의 '아라베스크'를 보고 있자면 우아한 마음이 깃듭니다. 마치 공중에 멈춰 있는 듯한 점프 동작인 '그랑 제떼(Grand jete)'를 보면 그 놀라운 도약에 시원한 대리 만족을 느꼈어요. 원초적이지만 정제된 몸짓에서 한계를 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감명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발레 공연이 갖고 있는 매력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마린스키 발레단이 보여주는 라바야데르 대표 군무, '망령의 왕국']

 

 

 

참고

1.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 프로그램북

2. 유니버설발레단의 네이버캐스트 <라 바야데르>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91&contents_id=101570

 

by 왕마담 2016.04.18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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